마네가 그린 최초의 인상주의 회화
베이지색, 흰색, 검은색, 회색이 만들어낸 처연한 풍경. 그림을 보았을 때 처음 느꼈던 감상이었다. 작품을 처음본건 파리 코뮌과 예술의 관계를 다룬 홀리스 클레이슨의 책이었다.
마네는 이 그림을 샤를레(H. Charlet)라는 사람을 위해 그렸는데 왼쪽 아래에 쓰여 있는 â mon ami H. Charlet(나의 친구 샤를레에게)라는 글씨로 추정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 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히진 못했지만 화가와 함께 복무했던 동료 중 한 명일거라 보고 있다.
1870년 당시 마네가 군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함께 복무한 동지에 대한 우정을 표현하고 그 시절을 기억할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작품을 마네가 그린 최초의 인상주의 풍경이라 평하면서도 프랑스 제2제국의 몰락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그림이라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 그림은 보불전쟁이 터진 1870년 겨울 그려졌으며 그림 속에 그려진 대상은 다름 아닌 제2제국 시절 세워진 교회였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 다시 보면 그림 속에 표현된 인상이 자연의 효과를 넘어 어떤 상징적 장치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면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전경은 12월의 칼바람을 파도가 치는 것처럼 거칠게 묘사했다.
중앙에 있는 교회와 종탑은 쏟아지는 눈폭풍에 쓸려나갈 듯 위태롭다.
하늘은 마치 종말을 예견하는 듯 음울하고 재에 뒤덮인듯하다.
이렇게 보면 이 그림은 엄혹했던 시절에 대한 끔찍한 기억을 담은 무엇이자 프랑스의 현상황에 대한 착잡한 심정을 담은 무엇으로 보인다.
스스로가 공화주의자를 자처했지만 애국심 또한 남달랐던 이 화가에게 자신이 그토록 반대했던 제국의 갑작스러운 몰락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단지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마네의 심리를 추측하는 건 지나친 비약일 것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한 건 그 몰락이 마냥 반가운 무엇은 아니었을 것이란 점이다.
인상주의자들이 표현했던 부르주아들의 유희는 이 그림에 없다. 대기의 미묘한 변화도, 가스등 아래 화려했던 파리의 모습도 없다.
빛의 회화는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역사에서 가장 어두웠던 시절을 담는 매개체로 기능한다.
때문에 이 그림은 인상주의의 역사에서 분명 이질적인 무엇이다.
하지만 바로 그 이질적인 속성이 역사의 소용돌이 한가운데로 휩쓸린 개인의 처지를 누구보다 잘 보여주는 듯하다.
한 개인이 도저히 읽어볼 수도 없는 기록의 홍수 속에서 불현듯 튀어나온 그림 한 장.
그것이 때때로 역사 속 박제된 석고상이 아닌 살아있는 피부로서의 인간을 느끼게 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