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기록

클래어 비숍, 래디컬 뮤지엄- 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공식 2021. 12. 4. 17:50

 

클래어 비숍, 래디컬 뮤지엄-동시대 미술관에서 무엇이 '동시대적'인가?, 2016

 

 

 

미술계에서 나름 핫한 비평가, 큐레이터인 클래어 비숍의 책. 주석, 역자후기 포함 150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짧은 분량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집어들었다.

 

글 자체는 활자도 크고 중간중간 삽화와 사진도 많아서 쉬이 읽히지만 담고 있는 내용은 오랫동안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저자는 자본의 논리에 잠식된 소위 거대미술관(한국으로 치면 국립중앙박물관이나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 행태를 극복한 미술 공간들을 소개하며 동시대 미술관이 어떠한 형태를 취해야 하는지 제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동시대라는 말에 대해 재정의하고자 시도한다. 클래어 비숍 이전에도 동시대란 용어는 미술에서 다양한 의미로 쓰였다. 근대라는 용어가 1700-1800년대 언저리를 의미하는 용어임과 근대성이라는 속성이 드러나는 시대라는 뜻이 있듯이 동시대라는 말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시간이라는 물리적 의미와 함께 '동시대성'이라는 특징이 드러나는 시대라는 의미로 쓰인다. 이때 클레어 비숍의 저서는 이 후자의 의미를 미술관이라는 공간에 대한 연구를 통해 탐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세 가지 미술관의 사례를 제시하는데 이들 모두 과거의 사례를 적극적으로 참조해 현재의 상황에 새로운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미술관들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시 말해, 동시대 미술관은 자신의 소장품을 현재의 새로운 정치적 맥락으로 재해석하고 이를 통해 관객들이 동시대의 사회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게끔 하는 그러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근대적 미술관이 미술 역사상 명작이라 불리는 작품들을 나열해 대중들에게 전시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요컨대 동시대 미술관은 단지 멀리 떨어져서 수백년전에 만들어진 예술 작품들을 관조하는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 들어선 순간 관람자는 과거의 작품들을 통해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문제(심지어 그것이 관람자에게 역린과 같은 것일지라도)를 목도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서 핵심은 미술관들이 과거의 작품들을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있다. 과거 동시대 혹은 현대라는 이름이 붙은 미술관은 생존 작가들의 기획전이나 실험적인 형식의 신작들을 전시하는 곳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미술관들은 물리적 시간의 의미에서 동시대성이 아니라 동시대의 시간감각을 이용해 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시대적이라고 주장한다. 즉, 그들은 과거의 작품들을 오늘날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제시하는 식으로 여러 사회적 문제들에 메세지를 낸다. 가령 마드리드의 레이나소피아 미술관에 소장된 게르니카는 이제 피카소 개인의 천재성을 증명하는 명작으로 전시되는 것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 시기 국가폭력의 하나의 사례로 동시기 포스터, 사진, 신문들과 함께 전시된다.

 

이렇듯 현재와 과거의 두개의 시간대를 동시대 배치하는 방식은 저자가 현재주의라 일컫은 현재의 상황에 대한 타개책으로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현재의 미술관들이 세계를 전체의 차원에서 인식할 수 없으며 그러한 인식불가능성 자체를 조건삼아 전시를 꾸리는 행태를 보이고 있다고 말하는듯 하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저자가 제시한 사례들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지는 의구심이 든다. 또한 저자가 제시하고 있는 큐레이팅의 형태가 과연 새로운 무엇인가라는 점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글에서 제시하고 있는 전시의 형태는 시간을 공간적으로 사유하고자 하는 최근의 경향들을 설명하는데 더 없이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때문에 매우 짧은 내용이지만 몇 번에 걸쳐 숙고하고 읽어야 하는 글인듯하다.

 

 

 

p.s 이 글과 할 포스터의 <컴플렉스>에서 지적하고 있는 건축의 비대함은 건물의 휘황찬란함에 비해 전시 구성은 형편 없는 한국의 모 공간을 떠오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