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인상주의18 인상주의의 기원 (6) 1867년 1월 14일. 장 도미니크 앵그르가 87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는 초상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죽기 전 친구들과 모여 식사를 하고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의의 사고로 몸져 눕게 되었고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죽음 이후 보수적인 평론가, 언론들이 일제히 부고기사를 쓰고 그를 추모했음은 이전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추모 열기가 변화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는 점도 말이다. 실제로 앵그르가 죽은지 1년 뒤 언론인이었던 마리우스 샤멜링(1833-1889)은 지난 20년간의 예술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예술은 죽었다. 그리고 순수 예술은 죽어가고 있다 ." 다소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회고와 다르게 이런 변화.. 2024. 7. 3. 인상주의의 기원 (5) 회화 분야에서 1828년에는 그리스인들과 터키인들의 물결이 있었다. 1840년에는 브르타뉴인들이 넘쳐흘렀고 그와 동시에 1850년까지 알제리의 군대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일본인들의 침공을 받고 있다. 사실주의 운동 이론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샹플뢰리(Champfleury, 1821-1889)는 1868년 11월 프랑스 화단의 전체적인 작품 경향을 비유적으로 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평은 정확했다. 항로가 전지구적 단위로 열린 이후 유럽 사회에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문화적 유행이 19세기 중반 프랑스 미술계에는 일본 미술의 유행이라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1870년, 프랑스가 새로운 맞이하기 전까지 마네, 모네, 시슬레, 바지유, 피사로 등은 다른 여러 화가들과 마찬가지.. 2024. 7. 3. 인상주의의 기원 (4) 역사화는 죽었다 풍경화 만세! 1859년 살롱 전시의 변화를 보고 들은 많은 사람들은 머리 속에서 이 말을 떠올렸을 것이다. 이제 대세가 바뀌었음이 아니 적어도 기존의 질서가 무위로 돌아가고 있음이 확실해졌다. 보수적인 평론가들은 아직도 부활한 역사화나 차세대 보수주의자들을 애타고 찾고 있었지만 권위와 위계에 얼어붙은 회화의 장벽은 이제 해빙의 징조를 보이고 있었다. 훗날 1867년 앵그르가 어처구니 없는 원인으로 사망하자 이런 분위기는 마치 역사의 당연한 방향으로 보일 정도였다. 보수적인 미술을 옹호했던 사람들과 기관들은 일제히 그의 부고 기사를 쓰며 위대한 화가의 죽음을 안타까워 했지만 이 추모 열기가 변화의 물결을 막지 못했음은 이미 여러 해 전에 증명된 바가 있었다. 또한 앵그르가 죽기 불과 2년.. 2024. 7. 1. 인상주의의 기원 (3) 다시 1859년 4월 5일 드가가 산업궁에 살롱전을 보기 위해 파리에 나타났을 때로 돌아가보자. 파리에 도착한 드가는 이전의 그와 달라져 있었다. 가장 결정적인 변화는 그의 초기 커리어에 큰 영향을 미친 한 사람을 만난 이후 시작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드가보다 8년이나 일찍 자신의 예술적인 커리어를 시작한 구스타프 모로(Gustave Moreau 1826-1898)를 만난다. 후일 야수주의의 거두 앙리 마티스를 가르치기도 하는 모로는 프랑스의 케케묵은 예술 분류를 적용시켜보면 신고전주의자는 아니었다. 그는 1830년대 화단에 낭만주의라는 혁신을 일으킨 인물들 중 하나인 테오도르 샤세리오(Théodore Chassériau, 1819-1856)의 제자였으며 그 유명한 외젠 들라크루아와도 교류가 있었던 .. 2024. 7. 1. 인상주의의 기원 (2) 1859년 4월 5일, 벽에 빼곡하게 걸린 작품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람객 한가운데에 24살의 에드가 드가가 있었다. 그는 2년 6개월간 파리를 떠나 각지를 돌아다녔었고 파리에 오자마자 살롱 전시를 보기 위해 산업궁을 찾았다. 산업궁은 1855년 파리 만국 박람회를 위해 건설된 구조물로 당시에는 최첨단 건축공학과 과학, 산업의 상징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하지만 철제 골격으로 짜맞춰진 이 신식 건물에 1857년부터 살롱 전시가 개최되면서 논란의 불씨가 점화되기 시작했다. 많은 비평가들과 관람객들은 한결같이 이곳에서의 살롱 전시를 부적절한 것으로 여겼다. 애초에 산업궁은 산업 제품들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어진 건물이었기에 그 성격이나 기능에 있어서 미술품을 전시하기에는 적절한 건물이 아니라는 주장이었.. 2024. 6. 20. 인상주의의 기원 (1) 1958년 10월 15일 런던의 소더비 경매장. 한껏 옷을 빼입은 일련의 남녀들이 경매장으로 들어갔다. 경매장의 바깥에도 이 경매를 멀리서나마 지켜보기 위해 몰려든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한 달 전 영국 언론에서 세기의 경매라는 이름으로 대서특필을 했기에 가능한 풍경이었다. 중개인이 마치 미사를 집전하는 주교처럼 엄숙한 표정으로 들어오고 곧 경매가 시작되었다. 그 날의 경매는 신문의 광고처럼 시작부터 역사에 남을 전설적 사건이 되었다. 첫 작품인 마네의 이 역대 최고가인 6만 5천 파운드에 팔린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연이어 나온 마네의 작품들은 최고가를 경신하며 팔려나갔고 뒤이어 나온 다른 인상주의 작품들도 최고가를 갱신했다. 세잔의 이 22만 파운드라는 경이적인 가격에 팔려나.. 2024. 6. 20.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