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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미술/한국 근대 미술12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2) 김주경, 약동하는 생명의 화가 김주경은 1902년 충북 진천에서 빈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지역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중 1920년 영국 출신 성공회 신부 찰스 헌트의 도움을 받아 당대 최고의 학교였던 경성제일보통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김주경과 미술의 인연은 그가 서울에 상경한 이후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김주경은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인 이종우가 선생으로 있던 고려미술원에서 목탄 데생을 배웠으며 이곳에서 오지호, 김용준 등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 작가, 평론가로 떠오르는 인물들과 교우관계를 맺습니다. 이후 1925년 경성고보를 졸업한 그 해 도일하여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에 입학합니다. 그의 화가 커리어는 26살이던 1927년에 시작됩니다. 당시 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김주경은 식민지 조.. 2023. 8. 17.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1) 배운성, 최초의 독일 유학파 배운성은 1900년 종로구 명륜동에서 수공업자의 넷째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성장기 배운성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는데 5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가난 속에서 공부를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16살까지 학교의 급사(관청이나 회사, 가게 따위에서 잔심부름을 시키기 위하여 부리는 사람)로 일하며 야학으로 학업을 작가는 고위 관료 출신이자 대부호였던 백인기의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게됩니다. 백인기는 이 당시 친일 활동을 벌이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인물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서화협회의 회원이기도 했는데 이런 이력이 배운성의 이후 행적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백인기의 집에 집사로 들어간 이후부터 유학 전까지 그의 삶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기존의 연구는 그가 3.1 운동 당.. 2023. 8. 8.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0) 임용련, 전쟁에 휘말린 유학파 화가 1982년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이었던 이구열은 일제강점기 유학파 화가였던 임용련(1901~1959)의 그림을 찾았다는 전화를 받습니다. 그렇게 찾아간 자리에서 그가 목도한 것은 임용련의 대표작이었던 (1930)이었습니다. 사료 속에만 존재했던 잊혀진 작가는 그렇게 세상 밖의 빛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활동했던 대부분의 작가가 그렇듯 임용련의 생애 또한 베일에 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연구된 바에 따르면 임용련은 평안남도 진남포 출신으로 배제고등보통학교에 재학했다고 합니다. 그의 인생에 중대한 변곡점이 생기는 것은 1919년에 들어서입니다. 임용련은 당시 3.1 운동에 참여해 일제 경찰의 수배령이 떨어졌고 그 때문에 중국으로 망명합니다. 중국에서 임용련은 임파라는 중국식 이름으로 활동하며 난징에 있.. 2023. 8. 7.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9) 장발, 한국 기독교 미술의 효시 1921년 식민지 조선에서 최초의 미술 전람회에 대한 열기가 달아올랐을 무렵, 동경미술학교를 다니던 한 학생이 미국행을 결심합니다. 이제 막 1년차 학생이었던 장발(1901-2001)은 그렇게 자신의 평생의 생애를 결정할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물론 그가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아주 모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찍이 인천의 가톨릭 집안 둘째 아들로 태어나 그곳을 드나드는 외국인들을 많이 만났으며 관립영어학교를 다녔던 아버지 장기빈의 영향으로 인해 영어에도 친숙했습니다. 형제들의 영향도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각각 미국과 독일에서 유학했던 장면과 장극 박사 모두 영어에 능통했으며 그 중 첫째였던 장면 박사가 1919년 미국으로 건너갔으므로 어느 정도 미국의 소식과 생활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을 것이라.. 2023. 8. 3.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8) 이종우,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 설초 이종우(1899-1979)는 1920년대 구미 유학파들을 언급할 때 제일 처음으로 언급되는 사람 중 한 명입니다. 그의 인생 궤적은 1920년대 구미 유학파들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줍니다. 황해도 봉산의 만석꾼 집안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일찍이 17세에 일본으로 미술 유학을 떠났고 이후 파리로 유학을 가 미술을 배워온 후 식민지 조선 화단의 중심에서 활약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국 미술계의 주요 작가로 인정받으며 관 주도의 미술 단체의 회장과 홍대 교수, 학장직을 역임했고 사망할 때까지 한국 화단에서 원로로 대우 받으며 한국 현대 미술사에 큰 족적을 남겼습니다. 그가 처음 미술을 배우게 된 것은 평양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일본인 교사의 권유에 의한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집안의 반대 때문.. 2023. 7. 31.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7) 1920년, 새 시대의 문턱 미술에서 1920년대는 여러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한 시기입니다. 제도적으로는 해방 이전까지 가장 권위 있는 공식 전람회인 선전이 개최되고 그에 발맞추어 여러 개인전들을 개최하는 경향 또한 늘어납니다. 특히 선전은 1932년 서양화가 야마구치 다케오가 회고했듯 “옆으로의 확장”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의 인식과 저변 확대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교육의 측면에 있어서도 동양화 일변도의 한정적인 교육 범위를 넘어 지방에서 활약하는 지역 작가들을 중심으로 서양화 학교 개설 움직임이 일어납니다. 이런 경향이 특히 두드러지는 지역은 일찍이 서양화가 유입된 평양과 대구였습니다. 평양의 삭성회, 대구의 영과회와 향토회 등은 이 시기 대표적인 지역 작가 단체이자 교육 단체로 여기에 속한 화가들이 비단 지역 전시뿐만 아니라 .. 2023. 7.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