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어느 날. 중년의 신사 한 명이 가게의 문을 열었다. 정치학자이자 미술 수장가였던 동주 이용희는 고미술서점을 둘러보던 중 특이한 그림 하나를 발견했다. 조선시대 수장가 김광국(金光國)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림이었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사실 이외에도 그가 이것을 주목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는 처음 작품을 본 순간 이것이 조선에서 제작된 작품이 아님을 알았다. 사실 그 작품은 비단 조선뿐만이 아니라 동아시아 3국의 회화와 확연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양의 동판화였다. 기법적인 측면에서 유럽에서 자주쓰였던 부식동판화(etching) 기법으로 제작되었고 그 안에 담긴 내용도 기존의 동양적인 회화 주제와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 날, 그렇게 의문의 그림 하나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세상에 공개된 의문의 그림이 당시 학자들의 주목을 끈건 당연했다. 수장가였던 김광국이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 이 서양 동판화는 한국미술사의 양식적 맥락에서 동떨어져 있었고 심지어는 주변국들의 양식적인 맥락과도 일치하지 않았다. 이 기묘한 그림이 세상에 나오자마자 학자들은 그림의 출처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그림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조선? 아니면 개항기? 그것도 아니면 일제 강점기? 혹시 해방 이후 비교적 최근에 들어온 것은 아닐까? 온갖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지만 확실한 대답을 해줄 사람은 없었다. 학자들은 막연히 이 그림이 만약 조선시대 것이라면 청나라에서 조선으로 유입된 서양화라는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초기에 이 그림을 연구했던 학자들은 작품의 양식적인 특징을 토대로 베네치아 화파의 무명 화가가 작업한 그림이라고 여겼다. 그러다가 2000년대 초반이 되서야 한 연구자에 의해 네덜란드에서 피터 셍크라는 사람이 제작한 동판화였음이 드러났다. 그러나 작가와 출처를 안다고 해서 작품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림은 여전히 안개 속에 가려진 존재였고 미술사학자들이 밝혀낼 사안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다.
그림이 처음 발견될 당시 한국의 미술사학은 태동기를 지나 학제적인 체계가 어느 정도 갖추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구자들의 연구 범위는 한정적이었고 연구 인력도 미비했으며 설사 연구를 하더라도 이를 발표하고 게재할 학회 또한 많지 않은 상태였다. 어제의 학문적 동지가 총부리를 겨누며 박물관의 미술품들을 이북으로 가져가려 시도한 것이 불과 20년 전 일이었다. 상황이 이러할진데 한국의 미술사학이 일본이나 유럽의 미술사학과 비교해보면 걸음마 수준이었던 것은 당연했다. 거의 최초의 미술사학회라고 볼 수 있는 고고미술동인회(1960년 창립) 이후 70년대, 심하게는 90년대를 넘어가서야 미술사 관련 학회들이 제 모습을 찾아갔다는 사실은 한국 내에서 이 학문이 가진 풍토를 잘 대변해준다. 오늘날 미술사학계가 교류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상황과 대비해보면 당시의 연구 풍토에서 이 그림의 정체를 추적하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이것이 그림에 대한 추적이 이대로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늘날 이 그림은 소장처, 입수 경위 등이 어느 정도는 알려졌고 관련 논문, 단행본도 제법 쓰여져 일반인들도 맘만 먹으면 그림의 정체에 대해서 알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이 정도의 진척이 있었던 것은 그림이 처음 알려진 당시에도 그 정체에 대해 어렴풋이 나마 추측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그림이 처음 공개될 당시에도 연구의 물꼬를 틔워줄 선행연구가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이미 구미학계나 일본 학계에서 미술교류, 특히 동양 세계에 들어온 서양화에 대한 연구가 존재하고 있었고 이런 연구들을 토대로 의문점들에 대해서 대략적인 추측할 수 있었다. 그러나 단순한 추측만으로는 하나의 글이 완성될 수 없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
이 글은 20세기 한국에서 불쑥 튀어나온 이 의문의 그림을 따라가는 여정이다. 그 과정에서 이 글은 유럽 세계과 명,청 그리고 당시의 조선이었던 한반도를 거쳐가게 될 것이다. 하지만 더 넓게 보면 이 글은 단순히 여정을 따라가는데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더 정확히 말해 이 글은 의문이 그림이 21세기의 우리에게 말해주는 그 당시의 문화에 대한 토막글이 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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