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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니얼 퍼거슨, 둠 재앙의 정치학, 2021

by 공식 2021. 12. 15.

 

니얼 퍼거슨의 책이 출간되었을 때 흥미로움 보다는 의구심이 먼저 들었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글을 시작해야겠다. 저자의 성향, 이전 책들에 관한 비평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의문은 펜데믹이 끝나지 않은 시점에 이 책이 어떤 교훈을 던져줄 수 있는가 혹은 서둘러 마침표, 쉼표를 찍기에는 현 상황이 너무나도 불확실하지 않은가에 있었다. 이런 의문은 책이 단지 사태의 나열과 피상적 분석으로 끝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물론 저자는 그것이 한가한 소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하며 시간적 격차가 사건에 대한 통찰을 보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 의문은 독서 내내 떠나지 않았고 책을 완독한 지금까지도 명쾌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둠 - 재앙의 정치학』이 단지 현상에 대한 서투른 갈무리에 불과하다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재난의 사회적 의미와 그것의 역사적 사례를 풍부하게 제시한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흥미진진한 독서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가 재난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폭넓은 관점을 제공해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저자의 책은 재난의 정치학을 표방한다. 여기서 정치학이라는 것은 크게 세 가지 의미로 구체화된다. 첫째 재난의 원인과 영향에 있어 인간과 자연의 이분법 거부, 둘째 네트워크 이론을 통해 보는 재난, 셋째 앞서 제시한 논의들을 토대로 현재의 사회적 상황, 지정학적 상관관계를 검토하는 것. 이 중에서 저자는 세 번째 지점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보인다. 그것이 동시대의 현상을 다루는 부분임과 동시에 펜데믹 이후의 국제 관계라는 저자의 관심이 나타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읽을 때 관심을 두었던 것은 첫 번째와 두 번째였다.

 

우선 책은 재난의 정의에 관한 문제와 그것이 어떤 역사적 함의를 품고 있는지 밝힌다. 책에서 재난은 천재지변이나 형이상학적인 무언가의 개입이 포함된 사태, 그도 아니면 인간이 어찌 해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무언가가 아니다. 이것은 재난이 가진 자연적 측면을 완전히 무시하자는 것이 아니다. 화산폭발, 지진, 전염병과 같은 재난들이 환경적 요인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저자 또한 재난이 자연이라는 예측불가능한 영역에 기반한 경우가 많다고 주장하며 설사 그것이 예측 가능하다고 해도 언제, 어디서, 어떻게 벌어질지 알 수 없다는 점에서 불확실성이 존재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불확실성으로 인해 재난이 신의 분노, 거대한 법칙의 일부, 타락한 문명에 대한 정화로 여겨졌다는 점 또한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그러한 태도들이 재난이 가진 복합적인 성격을 이해함에 있어 큰 도움이 되질 않으며 심지어는 사태를 악화시킨다고 주장한다.

 

책에서 재난의 역사와 전개 양상에 보다 집중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자는 재난을 자연 현상이라는 불씨로 인해 사회에 내재된 불안 요소가 폭발하는 현상으로 이해하는 듯하다. 책에서 많은 분량을 할애에 서술하고 있는 재난의 역사는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한다. 인지 편향, 정책상의 모순, 과학적 편견, 경제적 불평등, 과밀화된 인구, 교통 수단의 발달과 인구 이동, 단순 실수 등 재난이 단지 자연 현상이 아닌 문명에 피해를 가하는 끔찍한 현상으로 발전하는 데는 사회적 요소가 개입된다. 저자는 재난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취약한 사회 시스템이나 인간들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것임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을 벗어나 둘 사이의 상호작용을 강조하는 경향이 새로운 관점은 아니다. 인류세가 인문학 영역에 새로운 논쟁의 장을 열어놓은 이후 자연과 사회를 유기적으로 파악하고자 하는 연구가 늘어났으며 기후위기와 같은 재난이 단순히 환경 문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다양한 각도에서 증명하고 있다. 더구나 이런 논의가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논의된 생명정치, 생태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상기하면 재난의 정치학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사안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그의 책을 읽을 때 기대했던 것 중 하나는 재난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를 어떻게 분석하고 있는가에 대한 부분이었다. 분명 그는 코로나19 기간 동안 일어났던 BLM 운동에 대해 서술하며 계급, 인종의 문제가 재난과 긴밀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저자는 그것이 과거 전염병이 퍼졌던 시기 종교적 속죄 행진, 혁명과 유사성이 있음을 지적하며 과거 역사와의 연관성을 추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지점에서 저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책은 재난으로 인한 불평등의 문제를 거론하기보다는 그것의 원인과 영향에 대한 일반론에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BLM이 불평등과 인종 문제가 아닌 재난 시기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처럼 서술된다는 점을 통해 뒷받침된다. 이것은 저자의 책이 재난으로 인한 사회적 문제보다는 재난이 어떠한 방식으로 이해되어야 하고 또 이를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두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네트워크 과학은 이러한 일반론을 개진하기 위한 중요한 틀로 등장한다. 저자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재난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분석한 이후 그것의 한계를 언급하며 네트워크 과학이 재난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이론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사회와 자연은 모두 복잡한 네트워크 구조를 이루고 있으며 그러한 구조는 각각 고립된 체계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네트워크들과 상호작용을 맺는다. 복잡계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는 이러한 구조는 왜 질병이 그토록 빠르게 전세계에 퍼졌는지, 왜 섬처럼 스스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자멸을 초래하는 것인지를 보여주는 이론적인 틀로 제시되고 있다. 또한 그는 이러한 이론을 토대로 의학사가 질병에 대한 정복의 역사로 서술되는 것이 아닌 네트워크의 확대에 따른 전염병 전파의 역사로 서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는 과학의 진보로 인한 완전 정복의 서사가 아닌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 관계로 질병과 인간을 위치 짓는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런데 저자는 이 용어를 단순히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성을 보여주는 틀로서 제시하는 것을 넘어 사회를 이해함에 있어서도 중요한 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재난을 대하는 태도 있어 네트워크 이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을 교정시켜 줄 것이라 본다. 이러한 주장은 재난을 둘러싼 한 가지 클리셰적인 태도를 비판하는 것이다. 그는 재난의 책임을 특정 지역, 특정 인물, 특정 정치체에 돌리는 태도가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무능의 심리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6장은 이를 상세히 다룬다. 나폴레옹의 러시아 공격 사례로 시작한 6장은 특정한 사건의 원인이 한 명의 결정권자 때문이 아닌 복합적인 정치, 사회적 상황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한다. 이것이 역사라는 거대한 흐름에 나폴레옹 또한 휩쓸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비슷한 이유에서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 인물들에게 "그들은 단지 사회적 선택 압력에 굴복한 것일 뿐이야"라는 식의 면죄부를 주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단지 나폴레옹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연결점을 가진 사람이었고 따라서 국가의 중요한 결정을 할 위치에 있었다는 점을 말할 뿐이다. 이런 관점은 모든 결정의 꼭대기에는 소수의 위정자가 있고 그들에 의해서 국가의 모든 것이 결정된다는 피라미드식 관점을 재고하게끔 한다. 챌린저호의 폭발과 체르노빌 사건, 저자 자신이 현재의 상황과 유사하다고 본 1957년 아시아 독감 유행은 재난이 소수의 결정권자의 실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다. 특히나 그는 세 사건이 소위 중간관리자라 불리는 사람들의 역할과 각 기관들의 상호 공조 여부, 제도적 경직성이 한쪽에서는 참사로 다른 한쪽에서는 성공적인 방역으로 이어졌다는 점에 주목한다. 저자가 보았을 때 재난 문제의 성패는 슈퍼 히어로보다는 사이드킥에게 달려있다. 비록 그가 전염병의 역사를 개괄하며 문제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으나 그러한 인물들이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연구 결과가 확산될 수 있었던 데에는 제도적 기반과 행위자들 간의 긴밀한 소통이 있었음을 강조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재난의 프랙털 기하학이라는 제목이 붙은 8장의 마지막 문단에서 저자는 재난과 네트워크의 문제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대부분의 재난들은 하나의 복잡계 시스템이 모종의 작은 동요의 결과로 임계 상태에 다다랐을 때 발생한다. 외생적 충격이 재앙을 일으키는 정도는 대개 그 상황에 처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구조에 의해 결정되는 함수다.(p. 462) 

 

책의 후반부부터 저자의 시야는 오늘날의 문제로 옮겨간다. 그는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시행되었던 여러가지 조치를 지금까지 논의했던 사항들을 토대로 검토하며 이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관료들의 실수와 트럼프와 같은 몇몇 위정자들의 안일한 대처, 언론들의 오보와 인터넷으로 퍼져나간 가짜뉴스 등 코로나가 오늘날과 같은 펜데믹을 초래하게 된 과정을 되짚어본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네트워크 과학이 코로나 초기 대응에 있어서 큰 도움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을 지적함과 동시에 2020년 기준 펜데믹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한 국가들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적절히 수정했던 국가들이라고 언급한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현상에 대한 저자의 분석에서 지속적으로 중국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는 것이다. 코로나19 초기 중국의 불투명한 정보공개를 비판한 것을 시작으로 9,10,11장 전체에 걸쳐 중국은 저자의 주요한 분석 대상으로 등장한다. 중국에 대해 분석하는 것은 단지 중국이 펜데믹의 발원지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저자는 펜데믹이 신냉전이라고 부르는 국제 정세에 어떠한 변화를 일으킬지 주목한다. 코로나19는 신냉전을 공고히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지정학적 변화가 일어날 것인가? 이에 대해 저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 하지만 그는 단지 낙관적으로 중국과 미국이 서로 합심하여 지금의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라는 논지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신의 방문교수 당시의 느꼈던 중국에 대한 감정, 중국과 미국의 갈등관계, 중국에서 쓰인 SF 소설에 대한 분석을 통해 중국에 대한 위협이 실존하며 그것이 미국 중심의 세계에 큰 위협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한다. 나아가 그는 펜데믹과 2010년 전후로 벌어진 여러 가지 국제적인 사건들로 인해 과거 미국의 우방으로 남았던 국가들이 어느 한쪽 편을 들지 않는 비동맹 세력으로 남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새로운 냉전 구도가 지난 세기의 냉전이 그랬듯 미국의 승리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가 중국을 경계하는 것은 국제 문제를 대처하는 중국의 태도가 현재의 사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되려 더 큰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류츠신의 SF소설 『삼체』를 언급하며 중국의 행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외계문명 트리솔라리스가 중국에 대한 비유적 언급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이것이 저자의 독창적 분석인지 널리 알려진 해석인지는 모르겠다) 작중에서 트리솔라리스가 개인이라고는 없는 극단적인 권위주의 사회이자 지구를 정복할 목적을 가진 외계 문명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분석은 중국 사회의 경직성과 자유에 대한 제한, 팽창주의적 태도를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는 중국을 둘러싼 지정학적 문제가 새로운 냉전 구도 하에서 펜데믹과 함께 예측할 수 없는 재난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글에 대한 감상을 한 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동시대의 사회적 문제를 다루는 책들의 경우 특히 감상을 다는 것이 조심스럽다. 어쩌면 내가 위에서 시도한 정리 자체가 그러한 감상을 대체할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둠 : 재앙의 정치학』은 그 분량만큼이나 방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서평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내가 관심 있어하는 부분만 집중적으로 요약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책에 대한 약간의 총평은 해야할 것 같다. 책에서 제시된 수많은 사례는 그것이 개개인의 인생에 큰 비극이었다는 점을 다소간 무시한다면 꽤나 흥미로운 사례들이었다. 또한 유럽, 북미를 중심으로 재난의 역사를 되짚은 부분은 이쪽 역사를 잘 모르는 입장에서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특히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당대의 증언들은 전염병을 대하는 심리적 양상이 과거나 지금이나 큰 틀에서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을 확인시켜줬다는 점에서 망각과 그로 인한 피해를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저자의 주장과 긴밀하게 연결되었다.

 

하지만 재앙의 정치학을 얼마나 깊이있게 다루었는가의 부분에 집중하자면 조금은 기대에 못 미친 것이 사실이다. 서두에 언급한 세 가지 의미 중 첫 번째, 두 번째 지점은 제시하는 사례들이 흥미로웠지만 이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이론적 틀들은 이미 여러 책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었다. 그는 책의 초반부에서 펜데믹 이전까지 전문가들이 기후위기에 집중한 것과 달리 자신을 포함한 몇몇은 전염병 문제에 주목했다고 말하며 연구의 독창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책에 등장하는 많은 논의들이 기후 위기에 대한 과학적, 인문학적 성찰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과연 저자의 책이 독창성 있는 무엇일까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책에는 참고문헌이 없고 미주만이 존재하기에 그가 어떤 책을 살펴보았는지 꼼꼼하게 살펴보지는 않았지만 논지 전개를 위해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들을 일정 부분 참고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지점의 경우 애초에 관심사가 아니었거니와 책의 분석이 과연 개개인에게 어떤 통찰을 던져줄 수 있는가 생각하면 그 또한 불확실해 보였다. 왜냐하면 책에서 네트워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달리 분석의 전반적인 초점은 국가 단위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고려할만한 전략들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즉,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 코로나19가 무엇이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통찰을 책에서 제공하는 것은 아니며 저자 자신도 그러한 목적으로 글을 쓴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여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비록 새롭지는 않더라도 재난을 바라보는 저자의 관점은 재난을 자연적인 무엇으로만 치부하는 사람들에게 꽤나 새로운 관점을 전달해주며 네트워크 과학에 의거한 재난 분석 또한 봉쇄와 폐쇄라는 단어를 남발하는 일부 주장들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본 서평은 부흥 카페 서평 이벤트(https://cafe.naver.com/booheong/210609)에 응하여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