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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 미술32

송대 산수화의 전파로 보는 동아시아 문화 교류 정치적인 부분에 대한 세간의 평가와는 달리 동아시아 미술 전통에서 송나라가 가지는 입지는 엄청나다. 오늘날 우리가 산수화 기법이라고 불릴만한 거의 모든 기법이 송나라 연간에 탄생하였고 동아시아에서 미술을 하는 사람이 큰 전거로 삼았던 사람들도 다름 아닌 송대의 거장들이었다. 또한 중국 자체의 미술사를 살펴보더라도 이들의 영향은 지대하다. 일례로 남송 멸망 이후 원나라에 발생한 일련의 화풍 변화들도 그 근원은 송대 회화에 대한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 시기 5대 10국 시대의 회화 기법을 추구하며 원말 사대가라 불렸던 황공망 ,왕몽, 오진, 예찬 또한 송대 회화 전통의 영향에서 자유로울수는 없었다. 이렇듯 송나라의 미술이 동아시아 미술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실상 중국 회화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 2021. 12. 4.
조선성리학과 무이구곡도 북송대 성리학을 집대성한 주희(1130 ~ 1200)는 54세가 되던 1183년 제자들과 복건성 무이산에 은거하며 강론과 저술에 몰두했다. 주희가 머물던 무이산은 산세가 험준하고 협곡이 발달해 있어 외지인의 접근이 힘들었다. 하지만 험준한 지형 만큼이나 경치가 빼어나기로 유명했는데 특히 무이구곡(武夷九曲)이라 불리우는 아홉개의 물줄기와 절벽은 중국 내에서도 손꼽히는 명소였다. 후일 성리학을 집대성하여 주자라 불리었던 주희는 무이구곡의 제 5곡에 제자들과 정자를 짓고 살았고 이후 이 지역은 주자성리학의 본산이자 발원지로 여겨졌다. 무이구곡도는 주자가 은거했던 무이구곡의 절경을 담은 그림을 일컫는 말이다. 이러한 그림은 단순히 절경을 간접적으로 감상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주자에 대한 존경심과 숭상을 목적.. 2021. 1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