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 미술32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 미술에서 근대란 무엇인가 앞으로 10여 회에 걸쳐서 한국근대미술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실 이 기획은 2014년에 간간히 올리던 한국 근현대 미술가들에 대한 글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당시에는 서울 일대에서 활발하게 열리던 한국근대미술 전시에 맞춰 나름 시의성 있는 글을 쓰려고 했기에 시대나 양식에 있어 일관성도 없었고 심지어는 한국근대미술사에서 잘 다루어지지 않는 화가들을 마치 빈번히 언급되는 화가인양 다룬 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개론서에 나오는 일반적인 틀에 맞추어 한국근대미술가들에 대한 이야기를 짧막하게 다루어보려고 합니다. 본격적인 작가론을 다루기보다는 간략한 작가, 작품 소개 정도로 그치는 글이 될터이니 구체적 정보를 원하시는 분들은 논문 검색을 하시거나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비치된 도.. 2023. 7. 13. 피터 셍크, 하멜 이후 100년만의 네덜란드 손님 - 동판화가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 김광국은 자신의 화집인 에 피터 셍크의 이 동판화를 사들인 이후 짧막한 감상문을 남겼다. 이 감상문은 비록 짧막하지만 이후 조선이 외국 문물을 대하는 태도를 생각해볼 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그는 이렇게 적었다. "서양 화법은 당나라의 방식도 송나라의 방식도 아닌 별체(別體)로 나온 것이다. 작은 화폭에 능히 천 리의 경치를 담았고 그 새김 기법의 신비로움은 비할데가 없다. 한 장의 종이에 한 격식을 갖추었구나" 그가 이 그림을 구매한 것은 순전히 호기심에 의해서였을 것이다. 그것은 이 화평에서도 드러난다. 김광국이 보기에 이 그림은 산수화라면 당연히 따져야할 정신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이 그림에서 '격식'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다름아닌 사실적인 화풍의 여부였다. 그리고 이것은 당대의 문인.. 2021. 12. 4. 피터 셍크, 하멜 이후 100년만의 네덜란드 손님 - 11 김광국은 오늘날 의관 출신의 수장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있었다. 연구 초기 많은 연구자들은 그를 양반 계층 내지 경화사족으로 오인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 와서는 그의 생애에 대해서 꽤 자세하게 알려졌지만 당시 한국 미술사학계에서 중인 수장가라는 존재는 그만큼 낯선 것이었다. 사실 이것은 비단 김광국의 정체를 넘어 조선과 근대미술이라는 복잡한 주제에 대한 하나의 입장을 정하는 문제로까지 연결된다. 다시 말해, 만약 김광국을 중인 수장가로 상정할 때 그 논의를 끝까지 밀고 갔을 경우 상품으로서의 미술작품의 의의, 더 나아가 도시문화와 시장, 개인취향의 발달과 근대적 주체 문제와 같은 쉽사리 건드리기 어려운 문제까지 맞닿아 있다. 이 문제 또한 최근의 한국미술사 논의에 있어서.. 2021. 12. 4. 피터 셍크, 하멜 이후 100년만의 네덜란드 손님 - 10 1776년, 조선의 22대왕 정조가 즉위했다. 왕은 즉위하자마자 여느 왕들이 그랬듯 청나라로 가는 사신단을 꾸렸다. 특별할 것도 없는 이 연행은 사실 인조 이후의 연경행 사신단이 그러했듯 의례적인 상찬과 그에 대한 답례 그리고 이 과정에서 부가적으로 벌어지는 막대한 이득의 상거래가 동반된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 시기를 전후로 하는 사신단은 이전의 사신단과 다른 무엇이 있었다. 우선 당시 사신단 주요 인물들의 면면을 보자. 1776년 당시 정사正使(사행단의 총책임자)는 박지원의 셋째 형이었던 박명원으로 서학과 관련이 깊은 인물이었다. 또 같은 달 사은부사로 연행길에 오른 홍문관부교리 서호수(1736 ∼ 1799) 같은 인물은 북학파의 대표적 인물로 서학에 우호적인 인물이었다. 또 같은 해는 아니지만 177.. 2021. 12. 4. 피터 셍크, 하멜 이후 100년만의 네덜란드 손님 - 9 마태오 리치가 죽은지 100년 가까이 지났다. 시대는 다시 피터 솅크가 중국행 무역선에 자신의 판화를 보낸 17세기 후반. 중국은 더 이상 한족의 통치를 받는 지역이 아니었다. 1644년 숭정 17년. 명나라가 멸망하고 그 자리를 만주족이 꿰차면서 중국 최후의 전통 왕조이자 최후의 이민족 왕조인 청나라가 들어섰다. 중국의 왕조 교체는 언제나 그렇듯이 동북아시아의 국제 정세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왔다. 16~17세기에 걸친 국제적인 전쟁과 정권 교체가 이 지역에 새로운 질서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으레 그렇듯 이 변화에 반발하여 구체제를 고수하는 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중국의 경우 남명정권이 그러했다. 물론 이들의 운명은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변화의 파도는 누구도 막을 수 없었고 그렇게 동아시아에 새로운 .. 2021. 12. 4. 피터 셍크, 하멜 이후 100년만의 네덜란드 손님 - 8 그림을 보면 천주는 어린아이이고 천모라 하는 부인이 안고 있다. 이 그림은 동판화 위에 그림물감을 칠한 것인데 그 용모는 살아 있고 동체나 팔과 손은 마치 화면에서 쑥 내밀 것만 같다. 정면을 보고 있는 얼굴은 요철이 있고 진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 고기원 마태오 리치는 문을 열었다. 2층에 위치한 자신의 사저에서 그는 북경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북경의 날씨는 으레 그렇듯이 덥고 건조했다. 흙먼지가 잔뜩 낀 북경의 하늘은 자신이 처음 중국 땅을 밟았던 그때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했다. 처음 그가 발을 딛은 광주 지역의 습하고 청명한 날씨가 여기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날씨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사실 이런 환경은 하느님이 신심 깊은 전도사에게 내려준 수난과 같은 것이었으니 되려 좋은.. 2021. 12. 4. 이전 1 2 3 4 5 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