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미술/19세기 미술 - 확장된 시선18 들라크루아와 19세기 비교해부학 - 사자, 호랑이 그리고 인간 원문 : Kliman, Eve Twose. “Delacroix’s Lions and Tigers: A Link between Man and Nature.” The Art Bulletin 64, no. 3 (1982) 예술가들에게 있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단지 철학적인 질문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을 묘사하는 태도와 형식을 결정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예술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커리어 초반이었던 1820년대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반영하는 일련의 스케치, 회화 작품들이 다수 남아있다. 들라크루아에게 자연은 양가적인 존재였다. 분명 자연은 평화롭고 풍성하지만 다른 한편 인간 사회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때때론 .. 2023. 10. 4. [번역] 네트워크된 체계 : 19세기 예술 시장 - 이 글은 와일리 앤 블랙웰(Wiley and Blackwell) 출판사에서 나온 『A Companion to Nineteenth‐Century Art』(2019) 중 파멜라 플레처와 앤 헬름라이히(Pamela Fletcher, Anne Helmreich)의 글 「Networked: The Art Market in the Nineteenth Century」를 번역한 것입니다. - 중간중간 등장하는 도판은 모두 원문에 실려있는 도판입니다. - 부족한 번역이니 대강의 내용 정도만 파악한다는 느낌으로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네트워크 된 체계: 19세기 예술 시장 파멜라 플레처, 앤 헬름라이히 당신이 부유한 런던 시민이고 그림 한 점을 산다고 가정해보자. 어디로 가야 하는가? 누구의 조언이 믿을만한가? 어떤.. 2023. 8. 28. 피에르나르시스 게렝의 스튜디오, 프랑스 낭만주의의 산실 원문 : John P. Lambertson, The genesis of French romanticism : P.-N . Guerin’s studio and the public sphere, (Doctoral Dissertation, University of Illinois, 1994) (프랑스 낭만주의의 기원: 피에르나르시스 게렝의 화실과 공론장) 근대 미술에서 프랑스 낭만주의의 역사는 곧 저항의 역사였다. 나폴레옹의 몰락을 전후로 화업을 시작한 젊은 화가들은 신고전주의를 고수하는 스승들의 화풍이 지나치게 딱딱하고 몰개성하다고 여겼다. 그들은 스승의 교습 방식을 거부하고 공공연하게 그들의 지침을 무시했다. 이 반항의 대표주자이자 이미 프랑스 살롱에서 한 차례 논란을 일으켰던 제리코를 시작으로 젊은 화가.. 2023. 8. 7. 들라크루아의 초기 커리어와 국가 후원 원문 : Elisabeth A. Fraser, Uncivil Alliances: Delacroix, the Private Collector, and the Public, Oxford Art Journal, 1998. (무례한 동맹: 들라크루아, 개인수장가 그리고 대중) 우리는 흔히 진보적 예술은 주류 혹은 제도와 기관의 매몰찬 외면 속에서 꽃핀다 생각한다. 이 관념을 뒷받침 하는 사례는 수없이 많다. 새로운 형식 실험을 도입했던 19-20세기 젊은 화가들의 투쟁이 현대 예술의 페이지 곳곳에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투쟁의 장에서 예외적 사례가 하나 있으니 그것이 바로 낭만주의다. 19세기 초 고전주의와 대립하며 유럽 문화계의 한 축을 이뤘던 낭만주의는 미술로 한정하자면 그것의 탄생 초기부터 국가의.. 2023. 7. 31. 19세기 프랑스 살롱전- 헤게모니와 불완전성 사이에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류 문명의 전개 과정을 요약하며 그것이 도전과 응전의 역사였다고 말했다. 19세기 살롱의 역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살롱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전시장은 서로 다른 예술적 생각들이 도전과 응전을 거듭하는 전쟁터였다. 그리고 이는 19세기에 생긴 갑작스러운 현상이라기 보다는 17-18세기부터 미약하게나마 나타났던 조짐이 표면화, 본격화 된 것에 가까웠다. 17세기 단 두 차례만 열렸던 살롱전은 국가의 프로파간다에 봉사하는 것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예술가라는 아카데미의 가치에 부합하는가라는 의문과 살롱전이 상업적 행위의 연장선이 아닌가라는 의심이 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18세기에 들어와서는 궁정과 귀족 사회에서 유행하던 바로크, 로코코 예술에 맞서 신고전주의를 고수하는 일군의 화가,.. 2023. 7. 18. 혁명 이후 프랑스 미술의 변화 -전통의 붕괴 혹은 다양성의 개화 원문 : Susan Siegfried, Alternative Narratives, Art History, vol.36, 2013. (대안적 내러티브들) 19세기 초 프랑스 미술계에서 보수적 경향을 대표하는 화가, 평론가들이 가장 자주 쓴 단어는 아마도 과잉이라는 단어일 것이다. 이때 과잉은 평자마다 다른 맥락으로 호출되었다. 누군가에게 과잉은 작품 수의 과잉이었다. 또 누군가에겐 작품 속 표현 방식의 과잉이었다. 과잉을 예술 향유층과 예술가의 증가와 연관시키기도 했다. 과잉이라는 단어가 지칭하는 대상은 저마다 달랐지만 그 의미는 명확했다. 과잉은 19세기 초 통제력을 잃은 예술을 수식하는 단골 용어였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그들의 문제의식은 동일했지만 현상에 대한 진단과 해결책은 차이가.. 2023. 6. 27. 이전 1 2 3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