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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기록

인류세 관련 저서들 독서기록

by 공식 2021. 12. 4.

 

인류세라는 단어는 최근 5년 동안 사회 각계각층에서 최근의 기후변동과 그것의 영향을 설명하는 단어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일민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디어 아마존》(2019)을 비롯해 유튜브에 업로드 된 다양한 강의, 쏟아져 나오는 관련 저서들과 생태, 환경 등의 키워드를 앞세운 수많은 강연들까지, 분야를 막론하고 인류세라는 단어는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는 인류세라는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한국에 번역된 책들을 몇 권 찾아 읽었다. 아래의 글은 이렇게 읽은 여러 책들에 대한 독서기록이자 짧은 감상이다.

 

이후 소개될 책들은 아래와 같은 네 가지 범주로 분류된다. 이는 독서 과정에서 이해를 위해 임의적으로 범주를 나눈 것으로 실제 학자들이 이 논의를 어떻게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각각의 범주들은 독립적이기도 하지만 많은 부분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1. 입문서 : 기본 개념을 잡기에 적합하고 해당 개념에 대한 다양한 분야의 논의가 담겨있는 책.

2. 과학적 관점에서 본 인류세와 기후 변화의 양상들 : 지질학, 층서학에서 인류세가 탄생한 과정과 이에 대한 과학적 논쟁들, 인간이 초래한 환경적 변화(주로 부정적인 것)들의 양태와 이에 대한 노력들을 담은 책.

3. 인류세의 개념으로 보는 역사 :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지 않고 둘 사이의 유기적 관계에 초점을 맞추어 역사를 서술한 책. 인류세의 기점에 대한 특정 주장을 개진한 책.

4. 인류세 시기의 정치, 윤리적 문제들 : 기후 위기로 인한 불평등, 자연과 인간에 대한 철학적 사고들을 비롯한 사회적 차원의 문제들을 다루는 책.

 

 

사이먼 L. 루이스,마크 A. 매슬린,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 2020.

얼 엘리스, <인류세>, 2021.

 

인류세는 그것의 의미가 다양하게 확장되었다고 해도 어쨌든 층서학에서 등장한 과학적 개념이다. 때문에 그것의 기원과 정의를 설명하는 많은 저작들이 일정부분의 과학적 지식을 요구한다. 과학 지식이 부족한 입장에서는 이런 점은 큰 난관이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국내에 번역된 입문서들이 이에 관해 상당히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두 책은 모두 뛰어난 입문서지만 서로 지향점이 다르다고 느꼈다. 우선 분량 자체는 <사피엔스가 장악한 행성>이 더 많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인류세의 관점에서 바라본 역사가 꽤나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다른 부분들이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다루어지거나 생략되었다는 느낌이 있다. 이에 반해 얼 엘리스의 책은 인류세를 둘러싼 과학적 의제들에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 역사적인 부분에 대한 서술은 상대적으로 빈약하다. 대신 이 책의 경우 윤리, 정치, 역사, 기후 위기 등 인류세로 촉발된 여러 논의들을 포괄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다음 독서를 위한 출발점으로 적합했다. 개인적으로 더 추천하는 책은 얼 엘리스의 책인데 분량도 적고 내용이 압축적이며 무엇보다 마지막에 적힌 독서안내가 꽤나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2050 거주불능 지구>, 2020.

가이아 빈스, <인류세의 모험>, 2018.

 

인류세 개념이 화제가 되었던 것은 연일 뉴스로 보도되는 플라스틱 바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상승, 생물종의 균질화 등 환경 이슈 때문일 것이다. 위 두 개의 책은 바로 그러한 이슈를 인류세 논의와 연결지어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내가 읽은 두 책은 앞에서 언급한 입문서들과 마찬가지로 꽤나 다른 성격과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책이었다. 우선 <2050 거주불능 지구>의 경우 환경파괴와 그것의 결과라는 전통적인 기후위기에 대한 책들의 연장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책이다. 이 책은 최근 몇 년 간 벌어진 지구 곳곳의 환경 위기에 대한 지식들을 업데이트 해줬다는 점에 있어서 훌륭할 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사회의 변화들을 일목요연하게 설명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책이었다. 한편 <인류세의 모험> 같은 경우에는 <2050 거주불능 지구>처럼 정보의 전달보다는 자연의 변화에 맞서 변화를 모색하는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에세이, 여행기의 형식으로 담아낸 글이다. 하지만 책 안에서 짧막하게 설명하고 있는 지구공학에 관한 내용들이나 인류세에 대한 통찰들은 그 자체로 유용한 정보들을 제공해주고 있다.

 

 

브루노 라투르, <지구와 충돌하지 않고 착륙하는 방법>, 2021.

라즈 파텔,제이슨 W. 무어, <저렴한 것들의 세계사>, 2020.

 

앞서 언급한 책들에서도 다루고 있긴 하지만 인류세라는 시대 구분이 새삼스레 부각된 것은 이것이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변화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인간 세계의 변화를 추동하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 정치와 역사(혹은 경제)적 관점에서 인류세를 다루는 두 책에서 핵심은 인류세의 문제가 결국 인간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인류가 환경 악화에 따른 대비책을 세워둬야 한다든가 자연에 대한 착취를 멈추고 자연을 내버뤄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책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바는 인간이 환경에 차별적으로 개입하며 그 영향 또한 차별적이라는 것. 즉, 환경 문제는 결국 불평등의 문제이며 이때 불평등은 비단 인간과 자연의 관계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비인간, 선진국과 제3세계, 상층민과 하층민의 불평등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기존의 과학적 입장에서 바라본 인류세 논의가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는 영역들을 다루고 있다. 가령 지구공학적 해결법은 인간중심주의의 재림인가 아니면 인간의 개입에 대한 반성인가? 보존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선진국의 힘의 논리에 기댄 책임의 전가인가? 식품산업, 제조업의 친환경 정책은 모든 계층에게 이로운가? 등등의 문제들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들은 인류세가 단순히 환경 문제가 아닌 자본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음을 지적한다. 요컨대 인류세의 기원과 그것을 정의하는 문제에 있어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시기를 중요한 기점으로 삼거나 산업 혁명으로 촉발된 서유럽의 여러 변화들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자본이 자연을 착취하고 개발함에 따라 현재의 문제를 초래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관점은 인류세의 위기를 어떻게 돌파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여러 저작들에서 인류세는 자연 환경의 변화와 맞물려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 언급되는 해결책이라는 것은 주로 자연을 변화시키거나 자연을 해치는 사회적인 요소들을 규제하는 방향에 초점이 맞춰진다. 하지만 인류세의 위기가 기후 변화로부터 촉발된 것이 아니라 자본의 문제로부터 촉발되었다면 해결책은 정치, 경제, 사회의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러한 분석은 인류세 문제를 과학자들과 정책결정자들이 해결해야 할 추상적이고 거대한 무엇이라거나 그것이 과학적 문제이기 때문에 사회적 개입의 여지가 없다는 식의 판단을 비판하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최근의 확장된 개념으로의 인류세 논의들과 연결된다.

 

 

마이크 데이비스, <인류세 시대의 맑스>, 2020.

 

마이크 데이비스의 책은 위의 책들과 꽤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이는 책에서 중점을 두는 것이 인류세라기 보다는 마르크스 사상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인류세에 관한 책이라기 보다는 19-20세기 노동운동과 저항의 역사,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독해에 관한 책이라고 봤다. 책에서 인류세에 대한 부분은 마지막 장에 등장하는데 여기서 저자는 인류세에 대한 그간의 논의에서 부정적인 것 혹은 변화가 필요한 것으로 여겨진 도시를 변화(심지어 혁명)의 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 책은 인류세 시대에 그 피해를 고스란히 받게 될 존재들이 연대하고 행동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논의 자체를 마르크스의 논의에서 끌어온 것이 그렇게까지 새로운 논의인가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 책의 가치는 사실 서문에 담긴 마르크스 연구사에 대한 부분과 민족주의에 대한 짧은 논의 그리고 표트르 크로프트킨의 지리학 이론에 대한 간명한 설명에 있었다.

 

 

뱅상 노르망 외, <디어아마존>, 2021

 

인류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된 책. 책 자체는 인류세 문제에 대해 다양한 글을 기고한 여러 저자들이 참여했지만 밀도가 매우 떨어지고 글이 난해해서 이해하기가 꽤 어려웠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동명의 전시를 책으로 엮은 도록인데 사실상 도록이 아니라 기고문 모음집이라고 봐도 무방하니 전시를 봤던 안봣던 큰 상관이 없는 책이었다. 인류세 논의가 예술 분야에서 어떻게 활용되고 있는지 또 예술의 영역에서 환경 문제에 대처하고 있는 다양한 방식들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추천하는 책이지만 개인적으로 이에 관한 또 다른 책을 기다리는게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상의 책들 외에도 다양한 인류세 관련 저서들이 존재한다. 입문서로 많이 소개되는 클라이브 해밀턴의 <인류세>라던가 국내 저자들이 쓴 <우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하게 죽어가고 있다>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 원서의 영역으로 가면 한 두달 독서로는 소화할 수 없는 수 많은 책들이 기다리고 있다. 이런 저서들을 모두 읽을 수는 없지만 앞으로 차근차근 읽어나가면서 이해의 폭을 넓힐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