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86 마네가 그린 최초의 인상주의 회화 베이지색, 흰색, 검은색, 회색이 만들어낸 처연한 풍경. 그림을 보았을 때 처음 느꼈던 감상이었다. 작품을 처음본건 파리 코뮌과 예술의 관계를 다룬 홀리스 클레이슨의 책이었다. 마네는 이 그림을 샤를레(H. Charlet)라는 사람을 위해 그렸는데 왼쪽 아래에 쓰여 있는 â mon ami H. Charlet(나의 친구 샤를레에게)라는 글씨로 추정한 것이다. 학자들은 이 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밝히진 못했지만 화가와 함께 복무했던 동료 중 한 명일거라 보고 있다. 1870년 당시 마네가 군에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 그림은 함께 복무한 동지에 대한 우정을 표현하고 그 시절을 기억할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작품을 마네가 그린 최초의 인상주의 풍경이라 평하면서도 프랑스 제2제국의 몰락.. 2024. 1. 20. 인상주의란 말은 오명이었는가 (2) - '인상'의 복잡한 정의들 첫번째 인상주의 전시에 관한 비평들에서 주목할 점은 비평가들이 인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함에 있어 큰 거부감을 느끼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시를 본 비평가들은 서로 합의한 것이 없고 심지어 그 성향까지도 달랐지만 출품작들이 인상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파악했다. 이것은 1870년대 초의 시점에서 인상이라는 용어가 이미 프랑스 예술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로 1860년대 샤를 프랑수와 도비니(Charles-François Daubigny)로 대표되는 바르비종파 회화와 바르톨드 용킨트(Johan Barthold Jongkind)와 같이 바다 풍경에 집중했던 화가들을 비평할 때 인상이라는 용어는 단골손님처럼 등장했다. 하지만 그 용례를 따져보았을 때 1860년대 인상 개념이.. 2023. 12. 24. 인상주의란 말은 오명이었는가 (1) - 혁신과 환상 사이의 기원 원문 : Marnin Young, 「Impressionism and Criticism」, 『A Companian to Impressionism』, Wiley-Blackwell, 2021, pp. 11 - 26. 예술은 때때로 신화로 덧칠된다. 이런 신화에서 예술가들은 동시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하는 작품으로 큰 비난을 받으며 먼 후일에 가서야 진가를 인정받는다. 특히 근대 이후 예술가들의 주관적인 표현이 중요시되자 이런 신화는 대가들의 고난과 영광을 설명하는 당연한 서사로 받아들여졌다. 인상주의의 기원을 둘러싼 이야기는 이런 신화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874년 4월 15일 나다르의 사진관에서 첫 번째 인상주의 전시가 열렸다. 전시는 시작부터 대중과 평론가들의 비난에.. 2023. 12. 24. [번역] 앙투안 장 그로의 자살과 19세기초 예술의 변화 - 본 번역은 2010년 출간된 책 에 대한 세베린 소피오(Séverine Sofio)의 서평을 번역한 것입니다. 책에 대한 서지 정보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주세요. Amazon.fr - Le suicide de Gros: Les peintres de l'Empire et la génération romantique - Allard, Sébastien, Chaudonneret, Marie-Claude - Livres - 서평은 2012년 Nineteenth-Century Art Worldwide의 봄호에 게재되었습니다. 원문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www.19thc-artworldwide.org/spring12/le-suicide-de-gros-by-sebastien-alla.. 2023. 10. 24. 들라크루아와 19세기 비교해부학 - 사자, 호랑이 그리고 인간 원문 : Kliman, Eve Twose. “Delacroix’s Lions and Tigers: A Link between Man and Nature.” The Art Bulletin 64, no. 3 (1982) 예술가들에게 있어 자연과 인간의 관계는 단지 철학적인 질문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대상을 묘사하는 태도와 형식을 결정하다는 점에서 작가의 예술 세계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낭만주의 화가 들라크루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자연에 대한 관심은 커리어 초반이었던 1820년대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이를 반영하는 일련의 스케치, 회화 작품들이 다수 남아있다. 들라크루아에게 자연은 양가적인 존재였다. 분명 자연은 평화롭고 풍성하지만 다른 한편 인간 사회의 변화에 무관심하고 때때론 .. 2023. 10. 4.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2) 김주경, 약동하는 생명의 화가 김주경은 1902년 충북 진천에서 빈농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부터 학업에 뛰어난 재능을 보여 지역에 있는 학교에 다니던 중 1920년 영국 출신 성공회 신부 찰스 헌트의 도움을 받아 당대 최고의 학교였던 경성제일보통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김주경과 미술의 인연은 그가 서울에 상경한 이후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김주경은 최초의 프랑스 유학파인 이종우가 선생으로 있던 고려미술원에서 목탄 데생을 배웠으며 이곳에서 오지호, 김용준 등 식민지 조선에서 주요 작가, 평론가로 떠오르는 인물들과 교우관계를 맺습니다. 이후 1925년 경성고보를 졸업한 그 해 도일하여 도쿄미술학교 도화사범과에 입학합니다. 그의 화가 커리어는 26살이던 1927년에 시작됩니다. 당시 학교에 재학 중이었던 김주경은 식민지 조.. 2023. 8. 17. 이전 1 2 3 4 5 6 ··· 1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