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95 한국 근대 미술가 열전 (13) 오지호, 한국 인상주의의 대표주자 오지호(1905-1982)는 전남 화순 동복면에서 보성군수를 지냈던 아버지 오재영과 어머니 김의군 밑에서 여덟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고양이, 조랑말, 자화상을 그렸을 정도로 그림에 관심이 많았던 오지호는 16세이던 1920년 전주고보에 입학해 그곳에서 수채화를 익히고 이후 서울에 상경해 휘문고보 2학년으로 편입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최초의 양화가라 불리는 고희동에게 사사받으며 미술에 대한 관심을 이어갑니다. 그 무렵 그의 화가 인생에서 결정적인 사건 하나가 발생합니다. 그가 학생시절을 보낸 1920년대 경성은 막 해외에서 미술 공부를 마치고 귀국한 화가들이 각자의 개인전, 단체전을 열며 서양의 새로운 화풍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오지호 또한 그러한 경성의 문화적 배경 하에서 우연.. 2025. 4. 22. 역사적 풍경화의 탄생과 그 배경 Steven Adams, ‘The fault of being purely French’: The Practice and Theory of Landscape Painting in Post-Revolutionary France, Art History, 36, 2013 (순수하게 프랑스적인 것의 결점: 프랑스 혁명 이후 풍경화의 관행과 이론) 프랑스의 19세기 초는 혁신과 전통이 혼재하는 시기였다. 왕정 복고 이후 혁명 이전의 전통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보수적 인물들은 혁명으로 인해 열려버린 사회,경제, 정치,문화적 파도를 억제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동원했다. 하지만 그런 수단들은 얼마안가 거대한 해일을 막을 수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전통은 이 격랑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변화시켜야 했다. 19세.. 2024. 11. 21. 17세기 조선시대 어진 제작 전통의 부활 조선시대 어진의 역사에서 17세기는 중요한 분기점입니다. 100여 년가량 중단되어 소멸직전에 놓였던 어진 제작 전통이 이때 부활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를 이끈 장본인은 조선의 19대 왕 숙종이었습니다. 즉위 내내 숙종은 선대왕들의 어진과 전각을 개수하는 한편 살아있는 왕의 어진을 그려 봉안(신주나 초상화를 받들어 모시는 행위)한다는 옛 관행을 다시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새롭게 정립된 진전(어진을 모시는 제향 장소) 체제는 큰 틀에서 볼 때 대한제국 시기까지 이어집니다.숙종은 즉위 초부터 어진에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강화도에 있는 남별전 증축은 이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입니다. 1677년 숙종은 세조 어진과 원종 어진이 봉안된 남별전을 수리하고 규모 또한 1실에서 3실로 증축합니다. 숙종.. 2024. 7. 26. 인상주의의 기원 (6) 1867년 1월 14일. 장 도미니크 앵그르가 87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 그는 초상화 작업에 몰두하고 있었고 죽기 전 친구들과 모여 식사를 하고 모차르트, 하이든, 베토벤의 음악을 들었었다. 하지만 그날 밤 불의의 사고로 몸져 눕게 되었고 결국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그의 죽음 이후 보수적인 평론가, 언론들이 일제히 부고기사를 쓰고 그를 추모했음은 이전 글에서 말한 바 있다. 그리고 이런 추모 열기가 변화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는 점도 말이다. 실제로 앵그르가 죽은지 1년 뒤 언론인이었던 마리우스 샤멜링(1833-1889)은 지난 20년간의 예술을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위대한 예술은 죽었다. 그리고 순수 예술은 죽어가고 있다 ." 다소 비관적이고 종말론적인 회고와 다르게 이런 변화.. 2024. 7. 3. 인상주의의 기원 (5) 회화 분야에서 1828년에는 그리스인들과 터키인들의 물결이 있었다. 1840년에는 브르타뉴인들이 넘쳐흘렀고 그와 동시에 1850년까지 알제리의 군대와 싸워야 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일본인들의 침공을 받고 있다. 사실주의 운동 이론가이자 언론인이었던 샹플뢰리(Champfleury, 1821-1889)는 1868년 11월 프랑스 화단의 전체적인 작품 경향을 비유적으로 평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의 평은 정확했다. 항로가 전지구적 단위로 열린 이후 유럽 사회에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문화적 유행이 19세기 중반 프랑스 미술계에는 일본 미술의 유행이라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1870년, 프랑스가 새로운 맞이하기 전까지 마네, 모네, 시슬레, 바지유, 피사로 등은 다른 여러 화가들과 마찬가지.. 2024. 7. 3. 앵그르 vs 들라크루아, 만들어진 라이벌 원문 : Andrew Carrington Shelton, "Ingres versus Delacroix", Art History 23 (2000)앵그르 vs 들라크루아 1855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19세기 전반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두 화가의 회고전이 열렸다. 한 명은 고전주의의 옹호자이자 전통의 수호자로 여겨졌던 장오귀스트도미니크 앵그르(Jean-Auguste-Dominique Ingres, 1780-1867)이고 다른 한 명은 낭만주의의 기수이자 진보적 예술의 리더였던 외젠 들라크루아(Eugène Delacroix, 1798-1863)였다. 두 화가의 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것은 프랑스 미술이 30년간 걸어왔던 길을 두 화가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본다는 의미와 함께 프랑스가 유.. 2024. 7. 1. 이전 1 2 3 4 5 ··· 1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