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번역된 동물권 논의에서 중심이 되는 주제는 그 권리의 정의와 보장 범위인 것 같다.
이런 문제를 다루는 저작들은 동물은 투표 할 수 있는가? 동물은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검토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를 둘러싼 철학적, 정치적, 윤리적 논의에서 인간중심적인 사고 방식들을 비판한다. 마사 너스바움의 책은 그러한 경향의 한 일면을 보여준다. 책에서 중요한 화두는 정의와 법적 보호의 문제다.
여기서 저자는 동물에게 있어 정의란 대체 무엇인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을 들어가기 전 다양한 사례를 제시하며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하는 전략을 취한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독자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거나 경각심을 일깨워주기 위한 수사적 전략이 아니다. 저자가 주장하는 역량중심 접근법에 있어 공감, 분노, 연민, 경이와 같은 감정적인 요소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또한 잔인하게 학살당하고 의도치 않게 고통을 누리며 영문도 모른채 터전을 빼앗기는 동물들의 사례가 단지 그들을 내버려두라는 방임적 입장이나 그것이 나와는 상관이 없다는 방관적 입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은 일종의 도움닫기가 될 수 있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여기에서부터 동물권에 대한 여러 논의들이 검토되는 것이다.
추정컨대 저자가 기존 이론을 검토하면서 강력하게 비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중심주의, 나아가서는 인간의 오만함이다. 유사성의 원칙에 기댄 접근법은 동물을 인간의 행동양식과의 유사성으로 판단하며 이것은 많은 해악을 초래한 인간의 우월성을 재확인 한다는 점에서 지양 되어야한다. 공리주의 또한 미찬가지다. 쾌고감수능력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공리주의는 저자와 의견을 같이하지만 그 외에 동물이 특수하게 가질 수 있는 능력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 마지막으로 칸트적 접근법은 도덕을 인간의 특권적 능력으로 한정지으며 마찬가지로 인간중심적 사고를 드러낸다.
물론 이 모든 접근은 일정부분 저자의 주장과 공명하면서 공동 전선을 형성한다. 그럼에도 일부 세부 사항에서 드러나는 대립각으로 인해 저자의 주장은 큰 설득력을 갖는다. 저자는 앞선 논의들을 검토한 끝에 역량 중심 접근법이 동물의 권리를 보장함에 있어 탁월한 대안이 될수 있다고 주장한다. 역량 접근법은 저자의 말에 따르면 생명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번영하는 삶을 지향할 때 성취할 수 있는 목록들을 제공하고 그것들을 생명들이 성취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방법이다. 이 때 역량은 저마다의 개체마다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은 언제나 변할 수 있다. 가령 우리는 고릴라가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의 목록과 물고기가 번영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의 목록이 다를 수 있으며 그것의 세부 사항들이 개체들의 생활사나 생물학적 지식의 축적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해야 한다. 저자가 인정했듯 역량 접근법은 결국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깔고 있다. 하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의에서 가져온 것으로 모든 존재는 개개의 목적성을 지닌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비록 인간에 한정되긴 하지만) 생명은 그 자체로 내재하고 있는 가치와 존엄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사람의 목적에 생명이 종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칸트의 논의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이론의 실행 방법과 그것의 적용 범위에 있다. 저자도 그런 점을 의식했기 때문에 책의 후반부를 이에 대한 설명으로 채우고 있다. 특히 저자는 쾌고감수능력을 가진 동물의 역량을 존중하는 것을 강조하기에 이에 대한 과학적 연구를 토대로 그것의 적용대상들을 세세하게 따져보며 어떤 동물이 권리의 적용대상이 되는지 검토한다. 다음으로 저자는 역량 중심 접근법을 적용했을 때 제기될 수 있는 실제적인 문제들을 사례별로 살펴본다. 가령 인간의 역량과 동물의 역량이 그 이해충돌을 일으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동물의 역량을 침해하는 것이 특정 문화권의 생존과 관습에 중요한 것이라면 동물의 역량 발휘는 제한되어야 하는가? 동물의 역량이 침해되었을 경우 이에 대한 법적 보호는 어떻게 받아야 하는가? 아니 애초에, 동물은 원고적격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를 검토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동물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정에 설 수 있는가라는 다소 상상력을 자극하는 문제에 대한 답변이었다. 예상가능하게도 저자는 당연히 동물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며 이를 위해 법적 대리인을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없는 혹은 인지 능력이 떨어지는 인간 또한 법적 보호를 누린다는 점을 들어 동물이 동일한 권리를 누리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동물권의 문제가 결국 우리 사회에서 그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존재들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의 문제와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 보였다. 동물의 문제는 단순히 자연을 보호해야한다는 온정주의의 발로가 아닌 우리 사회의 약한 고리를 어떻게 단단히 묶어둘 것인가, 우리 사회가 얼마나 포용력있고 유연하게 타자를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인가의 문제와도 깊은 연관관계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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